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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흥부, 다른 쪽 뺨도 갖다 대다

기사승인 2019.12.31  20: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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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마태여행스케치/갈릴리예수를 찾아]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흥부는 형수가 밥주걱으로 뺨을 때리자 다른 쪽 뺨도 돌려 댔다. 예수께서 앙갚음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한 말씀이 연상된다. 그러나 흥부의 행위는 단순한 인내의 의미가 아니라 자기의 필요에 따라 한 행위였다. 즉 흥부는 너무 허기져서 밥주걱에 묻어 있는 밥풀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마 5:38~42절에는 인간 세상에서 실현 불가능하고도 상당히 비현실적이라 여겨지는 말씀이 나온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마라”는 말씀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구약 율법의 기록은 ‘과잉복수’를 금지하자는 의도이다. 가령 상대방이 나의 치아를 다치게 했다면 상대방의 치아를 훼손하는데 그쳐야지, 상대방의 손가락까지 부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른편 뺨은 상대의 손등으로 맞는 법인데, 이것은 이 세상을 떠나라는 경멸의 메시지다. 손바닥으로 맞는 것 보다 손등으로 맞으면 아픔은 덜 하지만 인격적 모멸감은 배가 된다.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식민지 백성의 노동력을 법적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징발하고 징용 할 합법적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지고 오 리를 가게 하는 짐꾼 역할을 요구할 수 있었다. 겉옷은 차도르 형식이었음으로 옷인 동시에 노숙 시 침구 역할도 했다. 그래서 겉옷까지 준다는 것은 이만 저만한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위의 말씀대로라면, 타인이 자신을 학대하고 혹사시키고 탈취할 때, 우리는 이윤을 따지는 경제 활동에서 파산할 수밖에 없다. 군비 경쟁 포기로 말미암아 삶의 토대가 물리적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 또 변호사의 위상은 증발된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 급의 위상을 지닌다. 단순한 각오로 실현 가능한 차원의 메시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진공상태에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숨 쉬는 현실적 공간 속에 주셨다. 그 말씀을 발견하고 당황한 것은 수선해야 될 부분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위의 말씀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독교역사에서 위의 말씀을 실천한 자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들은 순교자 수준의 신앙의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자신의 애착과 소유를 주님께서 보여주신 정의와 진리와 사랑의 제단에 한 개비 장작나무로 봉헌하는 것이 그러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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