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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인간의 진면목, 첨예한 이해관계 때 노출

기사승인 2020.03.21  16: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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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마태여행스케치/갈릴리예수를 찾아]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에 명시된 살인 조항을 언급하며(마 5:21~26), 한 발 더 엄격하게 나간다.

구체적인 살인 행위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형제에게 노하기만 해도 심판을 받게 되고, ‘라가라’라는 욕설을 입에 담기만 해도 산헤드린공회에 체포되며,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구체적 행동만 통제하는데서 모든 의무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행동의 동력이 될 수도 있는 입을 통해 소통되는 악의적 선언을 삼가 하라고 한다.

후기산업사회에서는 형법상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폭력’, ‘공포분위기 조성’도 법에 저촉된다. ‘일몰 이후’ 발생하거나 ‘노약자를 대상’으로 하면 가중처벌 된다.

그릇된 말의 거듭된 반복은 무의식적으로 그릇된 신념이 될 수 있기에 언어적 표현에 있어 부작용을 검토하고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혀 밑에 도끼가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먹보다 혀가 가공할 위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진면목은 결정적이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다급할 때 노출되고 확인되는 법이다. "완장 차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배기 본연의 모습인 것 이다. 평소에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평소 사회 생활 할 때는 늘 긴장하고 살기 때문에 말로 인한 과실에는 한계가 있다. 직장에서 분노해도 한계가 있는 것은 당장 직장에 사표를 던질 마음의 준비가 미처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경제적 이해득실의 원리가 그 사람의 내면을 통제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의 상처는 후유증이 남기는 하지만 의술로 어느 정도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언어폭력에 의한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상기되는 빈도수가 감소할 따름이지, 정신과 치료를 통해서도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교회분쟁이 교회분립으로 자리매김되는 원인은 그동안 서로 주고받았던 독설에 가까운 표현들이 서로의 가슴과 뼈에 사무칠 정도의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봉급을 받는 수세적 위상 때문에 말조심을 하는데, 교회에서는 헌금을 내는 공세적 위상이므로 자제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다급할 때는 입에서 재활용쓰레기 수준도 못되는 악취나는 매립용쓰레기 수준의 언어를 양산한다는 논리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우리 한국의 어르신들은 말을 지나치게 무례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보편적으로 “조상 중에 개망나니가 있었나 보네”라며 손사래를 치며 상대를 안하려 한다.

서구사회에는 욕 종류가 구조조정으로 통·폐합(?)되었는지? 몇 가지 안 되는데, 우리 한국사회의 욕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장르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호환성도 있다. 또 저주의 표적으로서 당사자만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없는 상대의 가족·조상까지 끌어댄다.

교회공동체에서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충돌할 때는 대면소통보다는 서면소통을 했으면 한다. 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경솔하게 다하게 되면 결국 자기 인격을 자기가 갉아먹게 된다.

이 말씀(마 5:21~26)의 의도는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의 입을 잘 통제해 교회공동체에 균열이 가는 것을 예방하라는 것이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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