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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감동을 주는 리더십’

기사승인 2020.06.10  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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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

▲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로 온 국민이 이유 없이 하나 되어 기뻐하고 환호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1945년 8월 15일 광복절과 2002년 월드컵 경기 16강, 8강, 4강 경기를 치룰 때였을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여당도 야당도 없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따로 없었다. 수구 꼴통이든 진보 빨갱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배우고 못 배우고의 차이도 없었다. 그냥 똑같이 환호했고, 똑같이 빨간 티셔츠를 입었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해도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단 하루를 산다 해도 즐겁게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해 하며 즐겁게 살도록 만들어주면 몰표를 던져준다. 사람은 밥 먹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을 먹어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밥 보다는 맛을 느끼며 먹기 원하기 때문에 먼 거리 마다 않고 차를 타고 밥 먹을 곳을 찾아간다.

사람들의 두뇌발달 상황과 지능지수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 IQ라면, 교육학자들은 20세기 최고의 수확은 EQ의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대니얼 골맨의 감성지수 이론인 EQ의 발견은 교육학과 사회학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의 영향을 30% 정도 받고 감정의 영향은 70% 정도 받는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아는 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기분 나빠서 안 하는 것이 더 많다.

15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장 기분 나쁘면 뛰어 내리고 보는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당장에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죽어도 안 하는 것이 사람의 본 모습이다.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내려다보았던 세리장 삭개오는 주님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정하고, 그의 집에 들어와 식사를 하시고, 그의 발을 닦아주는 영광을 얻게 되자 앞뒤 안 가리고 이런 제안을 했다.

“내 많은 재산을 팔아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고 혹시 내가 남의 돈을 억지로 세금으로 빼앗아 온 것이 발견된다면 4배를 쳐서 되돌려 주겠다고...”

네가 은혜를 받았다면 적어도 이런 결단을 해야 하고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가르치거나 강요한 적 없었다. 순전히 자발적인 감정으로 결단한 서약이었다. 목사는 성도들이 자발적인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십일조를 안 하면 삼대가 망합니다.”

“도무지 감사헌금도 할 줄 모르고, 그래 가지고 복 받겠어요?”

이렇게 강요하는 리더십을 사용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은 감동받으면 집문서도 가져올 수 있고, 결혼 때 받은 다이아 반지도 드릴 수 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사랑해 주면 목숨을 걸고 남자는 능력을 인정해 주면 목숨을 건다고 했다. 조직의 리더는 언제나 조직을 즐겁고 생동감 넘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탕자의 아버지에게서 리더십을 배워야겠다. 재산 타 가지고 집을 나가 방탕하게 살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과 형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아버지는 면목 없이 돌아온 아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고 살찐 소를 잡아 축제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뻤고 잔치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형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형은 잔칫상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재산 다 탕진하고, 허랑방탕한 놈을 위해 이럴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나를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리 잡아 본 적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에게는 돌아온 아들이 생명의 문제였다면 형에게는 동생이 재물의 문제였다. 생명을 사랑한 아버지는 돈과 상관없이 잔치를 열었다. 못났어도, 실패했어도, 상관없다. 잔치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형이 이런 아버지의 깊은 속마음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버지 살찐 소 몇 마리와 닭들도 잡지요”.

만약에 형이 이렇게 말했더라면 아버지는 큰 아들 때문에 또 한 번 감격했을 것이다. 우리는 기분 좋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어찌 보면 잔칫집이 되어야 한다. 실패냐 성공이냐를 물을 필요가 없다. 그냥 집 나갔던 식구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성대한 잔치를 열어야 한다. 잔칫집은 인색한 사람이나, 손이 작은 사람이 끼어들면 산통 다 깨진다. 교회 안에도 이런 형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앞서 일하는 사람이나, 기쁨으로 헌금하는 사람들 기분을 싹 잡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자기는 십일조, 선교헌금 전혀 드리지 않으면서 년 말 결산할 때 보면 꼭 이런 사람들이 일어나 올해는 십일조가 예산보다 부족하게 들어왔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람은 기분 좋게 살아가는 존재다. 감동을 받으면 거칠 것이 없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있는 곳에서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 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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