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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랭글리의 바보짓

기사승인 2020.08.12  05: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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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

▲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지금부터 꼭 113년 전인 1907년, 하늘을 나는 첫 비행기를 만든 사람은 자전거 기술자였던 라이트 형제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라이트 형제는 첫 비행을 하던 날까지 대학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비행에서도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명에 불과했고, 공중에 비행기를 처음으로 띄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사무엘 랭글리 박사였다.

그는 존경받는 수학과 천문학 교수였고, 스미스 소니언 협회의 임원이기도 했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철학가요,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그는 항공역학에 관한 중요한 책을 몇 권 펴내기도 했고 유인 비행기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1890년대 중반부터 무인 모형 비행기로 많은 실험을 해서 꽤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898년에는 미국의 군사 기관과 교섭하여 비행기 연구를 위해 5만 달러를 공적자금으로 위탁받았다.(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었다.) 랭글리 박사는 1901년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 무인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실험했다.

1903년 10월 8일 랭글리는 수많은 구경꾼과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레이트 에어로드럼 이라 불리는 비행기의 조종석에 올라탔다. 그러나 비행기를 이륙 시킬 때 비행기에 불이 붙어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랭글리에 대한 비판은 냉혹했다. 그러나 랭글리는 그때의 실패와 비판에 동요하지 않았다. 8주 뒤인 12월초 그는 다시 비행을 시도했다. 그는 수도 없이 정비를 하고 수정 보완을 해서 완벽한 상태에서 비행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행기가 이륙하려 할 때에 날개를 받치고 있던 케이블이 끊어지는 바람에 비행기는 다시 강물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러자 또다시 잔인하기 그지없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가 한 일을 두고 랭글리의 바보짓이라고 놀려댔다. 랭글리는 공적자금을 낭비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랭글리는 더 이상 비행 실험을 계속하지 않았다. 랭글리는 결국 포기한 것이었다. 패배하고 사기가 꺾인 채 수십 년이나 추구했던 비행기에 대한 꿈을 접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인 12월 17일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유명하지도 않았던, 그리고 나라의 공적 자금도 사용하지 않은 자전거 수리공이었던 오빌 라이트와 윌버 라이트 형제가 그들의 비행기인 플라이어 아이(Flyer I)로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 호크 해변의 모래 언덕 위를 날았다. 그들은 실험을 계속하여 1907년 드디어 비행기를 만들었고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역사상 처음 대서양 바다를 횡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랭글리는 실패의 순간을 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실험을 포기하였고 2년 후 발작 증세를 일으켰고 그 이듬해에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라이트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랭글리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 랭글리의 인생에 일어났던 일은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대부분 실패를 깨달은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패란 수많은 성공의 방법 중에서 안 되는 방법 하나를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

길거리에서 짐을 잔뜩 싫은 8t 트럭이 펑크가 나서 타이어가 주저앉아 버렸다. 운전기사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차 뒤에서 작키를 꺼냈다. 얼마 후 그 조그만 작키가 그 큰 트럭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우리의 믿음은 적은 것 같으나 작키와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한다.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일들을 할 수 있다. 난관 앞에서 남을 원망하고, 주저앉고, 포기한 채 내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난관을 난관으로 여기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명작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이다.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이 드디어 85일째에 집채만 한 커다란 물고기를 잡게 된다. 그러나 항구에 귀항하는 동안 상어가 쉴 새 없이 공격하여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게 된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 인생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인생은 결국 물고기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과 같이 허무한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엽총을 들고 그 총구를 입에 문채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의 소설처럼 허무하게 마감한 인생이었다.

하나님 없는 세계, 길을 바로 찾지 못한 세계는 결국은 허무주의로 끝나고 만다는 것을 헤밍웨이는 웅변하고 있다. 나를 의지하면 결국은 패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우린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 이제 더 이상 주저앉지 말자. 어설프게도 잠시 실패를 영원한 패배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혹 랭글리의 바보짓이라는 비판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신뢰해 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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