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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강석 총회장, 총신대 개교 기념감사예배

기사승인 2021.05.17  19: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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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시 23:1~6

▲ 소강석 총회장, 총신대 개교 120주년 기념감사예배 설교

여러분은 장영희 교수님이 쓰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을 보셨습니까? 엄청나게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인데요, 제가 오늘 총신 120주년기념 감사예배에서 설교 제목을 그분의 책 제목에서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도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살아온 은혜와 기적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서 살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영원한 목자로 삼았으며 목자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우리 총신의 120년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우리 총신은 1901년 마포삼열 선교사의 사택에서 평양신학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양신학교는 1907년에 7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했고, 또한 1907년 평양대부흥의 영향으로 평양신학교에도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국의 맥코믹 여사가 특별 기부를 해서 땅을 마련하고 1920년도에 교사를 건축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1919년 3.1 운동도 평양신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서 3.1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단의 총회장이셨던 김선두 목사님이 평양에서 3.1 운동을 주도해 가셨습니다.

또한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습니다.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지만 우리의 총신의 전신인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를 한 것입니다. 이런 순혈적 신학과 신앙이 우리 총신의 역사에 스며들어 있고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훗날 평양신학교를 이어서 조선신학교가 태동합니다. 그러나 당시 김재준 박사님이 문서설을 비롯하여 성경 무오설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자 거기에 정규오 목사님을 비롯한 51인 신앙동지회가 항거를 하며 제33회 대구 총회에서 탄원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한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바로 그 분들 때문에 우리 교단은 순혈적 신학과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순혈적 신학과 신앙을 지켜오던 우리 교단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CC 가입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통신학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선진들은 어쩔 수없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교단의 적통성과 법통성을 우리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눈물을 훔치며 허허벌판 황무지로 나와야 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살지 않고, 풀 한 포기 살지 않는 허허벌판 광야 같은 곳에서 그들은 광야에 눈물을 뿌리며 사막에 강을 내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눈물의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총신대를 세웠고 총회회관을 세워서 오늘날 한국의 장자교단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장로 교단을 이룬 것입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바로 총신12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이러한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를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교단이 분리된 이후에, 우리의 총신은 남산에서 대한신학교 교사였던 작은 컨테이너 건물을 임대하여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더는 그대로 신학교를 유지할 수 없어서 용산에 신학교 교사 마련을 하는 운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도 전국교회의 눈물어린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한 용산교사에도 강당이 없어서 복도 구석에까지 서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교수님들은 몇 달씩 월급도 받지 못했고 학생들은 학교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국교회로 모금운동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5년 동안 400여명의 학생들을 배출했습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오늘날 총신대학교는 이런 눈물과 땀의 과정을 거쳐서 세워지고 발전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먼저 누가 있었습니까? 김윤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김윤찬 목사님은 교단 분리 이후, 복구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 미국 매킨 타이어 박사에게 눈물의 후원 요청 편지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한국에서 보수신학을 사수하는 곳은 우리 교단과 총회신학교 뿐입니다. 우리 총회와 총신이 무너지면 한국의 보수신학도 무너지고 한국교회는 좌경화될 것입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마련한 종자돈 10만 불로 용산신학교 교사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구서문교회 담임목사이자 총신 교수로 섬기고 있던 명신홍 박사님이 총신을 세우는 모금운동의 선구자로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명신홍 목사님은 <신학지남>을 비롯해서 모든 매체를 통해서 총신을 세워야한다는 글을 기고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외쳤습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이때 백남조 장로님을 중심으로 하여 ‘13실업인동지회’가 발족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명신홍 박사님을 도미케 하여 미국에서 모금 운동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명신홍 박사님은 직장암 4차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었고 인공항문까지 달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미국 교회를 감동시켜 모금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백남조 장로님은 자신의 집도 없이 공장 안에 있는 조그만 양철집에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지만 총신 신축을 위하여 지금의 사당동 땅을 총회에 헌납한 것입니다. 그리고 총회는 총신 신축 5개년 계획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며 눈물겨운 헌신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기에 김인득 장로님의 기부로 법인이 설립되고 마침내 1969년에 총신대학이 인가를 받아 우리 총신의 찬란한 비전의 태양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바야흐로 이제 학교 설립 120주년을 맞는 총신의 역사적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총신은 정통 보수신학과 개혁신학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총신은 정통보수신학과 개혁신학을 지키고 세워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그 총신은 한국 장로교의 발원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총신은 장로교회를 세워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총신은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에 부흥의 파도를 일게 했던 진원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총신은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부흥의 대열에 서서 부흥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 총신은 3.1운동 등 민족운동과 애국운동에도 앞장 서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총신은 다분히 목회자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하여 민족의 역사를 품고 민족의 아픔과 눈물을 씻겨주는 선지 학교, 제사장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120년 동안 우리 총신이 존재하고 살아왔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기적이고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헌신과 교회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총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또한 총신은 교단의 신학적인 지도를 받고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사학법도 지키고 사학의 울타리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신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총신을 목자처럼 이끌어 가시는 분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총신은 교육부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우리 총회의 신학적 지도와 보호, 그리고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예성 교단 직영 신학교인 성결신학대학교가 있습니다. 그곳은 사학법을 지키면서도 온전히 총회의 지도를 받고 총회가 운영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총신이 이런 역사적 토대 위에 서 있는데, 몇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서 총신이 하마터면 절단이 날 뻔 했고 교단까지 갈라질 위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에서 교단을 나눌 터이니 소목사도 따라올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을 직접 받은 적도 있습니다. 결국 총신은 임시이사 체제를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임시이사체제 속에서도 우리 총신을 보호해주셨고, 그리고 이제 정이사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무엇보다도 저는 임시이사를 종결하고 정이사 체제를 구축하는데 가장 앞장 선 사람이고, 가장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으로 새 이사장님과 새 이사님들이 일정 부분에서는 사학법을 지키는 영역도 있어야겠지만, 동시에 더 중요한 것은 총회의 지도를 받고 총회의 신학적인 감독과 보호 속에서 총신이 더 번성하고 부흥하고 도약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정이사님들 뿐만 아니라 총신의 총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교직원님들께서 이런 총신의 역사를 알아주시고 앞으로 총신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사실 하마터면 총신 120주년을 임시이사체제에서 맞을 수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히 정이사 체제로 맞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재단이사장으로 선출되신 김기철 목사님께서도 우리 총신을 잘 받들고 섬겨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총신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모시고 왔을 때 120년의 생존의 기적을 누리고 경험한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목자로 삼으며 총회의 신학적 지도를 잘 받으시며 나아갈 때 다가올 200주년에는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결단과 다짐을 하고 헌신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 합동헤럴드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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