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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많이 비워라 그래야 채울 수 있다

기사승인 2022.05.11  04: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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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목사/서북협대표회장·총동창회수석부회장·전 정년연구위원장

▲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태평양 한 복판의 하와이 군도에 몰로카이라는 섬이 있다. 100년 전에는 저주의 섬이라고 불린 곳이다. 깎은 듯 솟아오른 화산 지형의 절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고 정면에는 파도가 밀려와 부서진다. 이곳은 생지옥 같은 곳이라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격리되어 있는 나환자들은 여기서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울어주는 사람도 없고 무덤을 만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환자들의 썩고 문드러진 시체는 산돼지와 들개들의 밥이 되었다.

이곳에 벨기에의 신부 다미안이 들어갔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누가 보내서 간 것도 아니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발로 스스로 걸어 지옥 같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다미안은 나환자들에게 생명의 존엄함을 알려주고 그들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을 깨닫게 해주길 원했다. 나환자들이 죽으면 관을 짜서 땅에 묻어주었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는 죽음 너머에 죽지 않고 아프지 않는 새 세상이 있음을 전해주었다. 울지 않아도 되고 억울함이 없는 주님의 나라가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다미안 신부를 냉대하며 비웃고 조롱했다.

“당신이 우리를 아느냐?

귀가 떨어져 나가고, 코가 문드러지며

피가 썩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아는가?”

다미안 신부의 호소는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했다. 다미안은 이때부터 나환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안아 주었다. 함께 기거할 오두막을 짓고, 예배당을 만들고 길도 만들었다. 가축 기르는 법과 노래하는 것도 가르쳤다. 다미안 신부가 몰로카이 섬에 들어온 지 11년이 되던 해 그의 다리에 끓는 물이 쏟아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리에 물집이 부풀어 오르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다음 날 미사 시간에 다미안 신부는 나환자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 문둥병자들은...”이라고 신부가 나환자가 된 것을 안 그들은 모두 울기 시작했다. 죽음과 저주의 섬은 이 순간부터 사랑의 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미안 신부의 얼굴은 문드러져 흉측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1889년 4월 부활절을 한 주 앞두고 다미안 신부는 숨을 거두었다. 1936년 벨기에 정부의 요청으로 다미안 신부의 시신이 고향으로 옮겨졌다. 몇 년이 지난 후 몰로카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신부님의 일부라도 되돌려달라고 요청했고 그들은 다미안 신부의 오른 팔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든 나환자들을 어루만져 주고 안아 주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기도 힘들고 죄가 있고 슬픔이 있고 끝내는 죽음이 있는 이 세상에 오셨을까? 사람들은 신이 되지 못해 안달복달하며 사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무엇이 아쉬워서 죄인의 몸으로 가난한 베들레헴 말구유 통으로 내려오신 것일까? 예루살렘의 호화스러운 궁궐에 황금면류관을 쓰시고 개선장군처럼 오시지 않고 핏덩이 어린 인간으로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로 슬며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온갖 죄를 다 저질렀으면서도 거룩한 척 위선을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 서도 스스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의 죽음을 말없이 받아들이신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극작가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서 “갈릴리 사람 예수가 죽은 자를 살려주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바다 위를 걸었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서 개죽음을 당했는가? 에 대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인류 역사상 본받고 싶은 가장 위대한 리더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리더는 자기를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만큼 자기를 비워내신 분이 어디에 있을까? 비우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우며 살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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