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운 목사/제자훈련국제칼넷 이사·대영교회
▲ 조 운 목사 |
한국교회사에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던 청년 맹의순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1926년 1월 1일, 평양 소재 맹관호 장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조선신학교 3학년 재학 중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 조 운 목사 |
수많은 피난 행렬 가운데 대구로 내려가던 중 그는 미군에게 인민군으로 오해받고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인민군과 중공군들이 모여 있는 천막에 광야 교회를 세웠다.
▲ 이권희 목사(신일교회), 홍동필 목사(예장합신 증경총회장), 조 운 목사, 김종원 목사(경산중앙교회), 좌측부터 |
그리고 그들에게 매일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전했다. 시간이 흐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님의 은혜로 세워진 광야교회가 자라고 성장해서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주님의 자녀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대영외국인한글학교 신앙수련회 |
포로수용소 바깥세상에서는 남대문교회 배명준 목사가 수소문 끝에 그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중등부 교사 시절 제자들과 함께 그의 석방을 요청하려고 수용소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 태국 푸켓 대영의료단기선교팀 |
이때 맹의순은 그들 앞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광야교회로 인도하신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저들을 두고 나갈 수 없다며 석방의 기회를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뇌막염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26년 8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가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된다.
▲ 대영어와나여름성경암송캠프 |
그의 죽음을 지켜본 광야교회 인민군 성도와 중공군 성도는 거룩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가 죽기 직전 외친 마지막 외마디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맹의순은 젊은 나이에 세상의 일락보다 십자가의 길을 더 사랑해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 대영교회 |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보는 사람만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바른 헌신을 할 수 있다. 어떤 삶의 형편 가운데 있다고 해도 소명을 잃지 말고 늘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잃지 않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 대영교회, 드림센터 |
◆편집자 주=조 운 목사는 부산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85회)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를 도와 부교역자로 14년 사역 후 울산 대영교회 담임목사로 22년째 사역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현재 제자훈련 국제칼넷(CAL-NET/이사장·대표:오정호 목사) 이사, OM선교회와 아릴락 성경번역선교회 이사, 그리고 WEC선교회 이사와 복음과도시 이사,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이사 등으로 섬기고 있다.
조 운 목사 dav112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