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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광석 칼럼] 은혜의 귀로

기사승인 2024.09.19  08: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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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광석 목사/총회목양아카데미 위원·동도교회·천마산기도원 원장

▲ 2006년 겨울 시카고 윌멧 글렌코 호수변에서 옥광석 목사

마을 끝 모퉁이에서 조그마한 모텔 방 하나를 얻었다. 샤워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질 않는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히터 소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뉴저지에서 만난 기근 때문이다. 그 기근의 후유증 때문이다. 이 기근 때문에 뜻하지 않은 장소로 가고 있다. 다음 날 새벽 몸이 무거웠다. 지난밤에 설친 잠과 피곤 때문에. 서울에서 잘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개척의 깃발만 꽂으면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어제 운전으로 피곤은 더욱 쌓였다. 그러니 잠을 설칠 수밖에.
 

▲ 2011년 봄 동도교회에서 설교하는 옥광석 목사

이른 새벽 샤워실로 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나을 것 같았다. 목욕통에 따뜻한 물을 채웠다. 물속에 들어가 다리를 쭉 뻗었다. 피곤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한 5~6분쯤 지났을까.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목욕통에 기대고 있는 양팔도 움직일 수 없다. 말도 할 수 없다. 목욕통에서 나가려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죽었구나 싶었다. 살아야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두고 이대로 끝날 수는 없었다.
 

▲ 어느해 성탄절에 옥광석 목사와 강아지

아내를 부르려고 했다.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난감했다. 몸에서 힘은 빠져나갔다. 몸은 계속 가라앉는다.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성령께 도움을 구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마음속으로 구하고 또 구했다. 목욕통에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쳤다. 결국 그분께서 도우셨다. 가까스로 목욕통에서 나왔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초라한 모습 보여주기 싫었다. 서둘러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차장엔 찬바람이 불었다. 겨울의 찬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살았구나! ”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시카고에 입성하기 전에 장례식을 치를 뻔했다. 주차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들어 저 먼 동산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덮여 있었다. 이 순간 “주님 도와주세요.”라는 탄식과 함께 성경 한 구절이 입에서 나왔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 고향 거제 삼거리교회 앞에서 친척들과(뒤쪽 중앙이 옥성석 목사의 동생 옥상석 장로, 오른쪽 옥광석 목사)

내가 이 시편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미국 중서부의 알지도 못하는 모텔 주차장에 주저앉아 산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하마터면 객사할 뻔했다. 그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객사였다. 쓰러진 나를, 죽어가는 나를 그분께서 살렸다. 주님께 애절한 심정으로 구했다. 그 순간 주차장은 그 옛날 야곱이 경험한 얍복 강이 되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 이날이 2005년 2월 19일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새로 보게 된 것이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토기장이이신 여호와께서 못난 나의 자아를 깨부수고 새롭게 빚기 시작한 것이다. 깨어지고 산산조각이 나야 새롭게 빚어질 수 있다. 새롭게 빚으시려고 주님은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뉴저지의 기근을 통과하여 이곳으로. “난 그렇게 죽었다.” 새롭게 빚어졌다. 유진 피터슨의 말이 떠오른다. “물고기 뱃속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얻은 것은 진정한 소명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소명자로 빚어졌다. 요나서의 몇 구절이 떠오른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오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2:1).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 2:10).
 

▲ 코로나 기간 중 동도교회 교역자들과 옥광석 목사 (앞쪽 중앙)

나의 요나 사건이 일어난 지 내년이면 20년이다. 이 새벽 왜 이날의 장면이 떠오른지 모른다. 왜 글을 쓰는지 모른다. 은혜로의 귀로 때문일까. 객사할 인생을 살려주신 그분의 은혜를 추억하고 싶어서일까. 추석은 추억하는 날이다. 잊기 쉬운 은혜를. 이른 새벽 보름달은 유난히 아름답고 밝다. 귀뚜라미 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객사할 인생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분의 쓰임 받고 있다. 감사뿐이다. 객사의 순간에서 동행하신 예수님께 큰절 올린다. 은혜를 잊은 자는 희망이 없다. 요나 뱃속의 경험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추석이 올 때면. 은혜의 귀로(歸路).
 

▲ 동도교회

◆편집자 주=옥광석 목사는 부산의 목회자(故 옥치상 목사/성동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총신대학교(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美 달라스신학교(S.T.M.)를 졸업한 후, 시카고 트리니티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 과정에서 공부했다. 목회적으로는 사랑의교회(당시 담임:옥한흠 목사), 뉴욕퀸즈장로교회, 시카고헤브론교회를 섬겼다.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소재한 동도교회 담임목사로 그리고 남양주에 위치한 천마산기도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총회적으로는 제108회기 목양아카데미 <교회여일어나라> 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옥광석 목사 pearlksoak@gmail.com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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