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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논단] 위·아래 실종된 총회현장

기사승인 2021.09.23  21: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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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전총회장에 대한 예우

▲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직전총회장·한교총 대표회장 법인이사장·새에덴교회)

예장합동 ‘제106회 총회’라는 배는 ‘제105회 총회’라는 물이 있었기에 진수될 수 있었다. ‘제105회 총회’는 ‘제106회 총회’라는 배의 원활한 진수와 항해를 위해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을 넘어 만재흘수선에 충분한 물을 채워 주었다.

그것을 설명하자면, 소강석 직전총회장은 미끄러운 기름 설거지를 많이 하다보면 접시를 깰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단과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설거지를 했다.

그 결과 제105회기만큼 예장합동 교단이 조용하고 화합이 잘 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소강석 직전총회장의 설거지 투혼으로 인해, 제105회 총회는 ‘미확인 지뢰’와 ‘불발탄’을 제106회 총회에 부담과 부채로 넘겨주지 않았다.

예년에는 교단 산하의 민감하고 생색나지 않고 껄적지근한 사안은 마치 ‘폭탄 돌리기’라도 하듯이 그럴듯한 명분을 생산하며 후임 총회장의 몫으로 방치(?)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현재를 사는 인간은 먼저 경험한 선임자의 땀 흘림에 대한 채무의식을 가져야 한다. 1970년대 중동 건설 근로자, 1960년대 베트남 파병 장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노고와 수고의 바탕 위에 현재의 안락한 삶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날 총회현장에서 소강석 직전총회장은 논리가 결여된 긴급동의를 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새로운 제안을 한 것도 아니다. 어느 특정 정치 계파를 저격하기 위한 발언도 아니었다. 평범한 발언 이었다. 제104회 총회에서 전국 총회총대들에 의해 결의된 해당 결의 사항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년 같으면 직전총회장이 발언하면 귀담아 듣고 어려워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직전총회장 발언에 대해 이미 동의 재청이 들어 왔는데도 고퇴는 두드려지지 않았고, 불미스러운 회의 광경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교단 내외적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평소 소강석 직전총회장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것이 체질화된 사람이다. 선임자에 대한 예의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 뿐 아니라, 교회연합 기관 방문시 평직원들에게도 먼저 따뜻한 인사말을 건넨다.

우리 한국 사회는 선임자를 존중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미풍양속으로 삼고 있다. 제106회 총회 말미에 벌어진 상황은 위·아래가 실종된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교단 산하 노회에서도 증경단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을 엄격한 규율로 삼고 있다.

이미 쏟아진 물을 제대로 수습하기 쉽지 않다. 사건 다 터지고 난 다음에는 그 어떠한 말로도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이 사건이 우연이고 돌발적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논리가 너무 부족하고 당사자인 그들의 속내가 훤히 비쳐지고 있다. 많은 단어의 나열을 통해 이 사건을 합리화하기 이전에 가슴이 찔리는 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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