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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품위 있게 살아야 할 이유

기사승인 2021.07.14  06: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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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목사/정년연구위원장·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

▲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시장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하늘이 꾸물꾸물 해지더니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겠지 했는데 비는 두어 시간동안을 계속 내렸고 짙게 내려앉은 먹구름은 물러갈 줄 몰랐다. 아주머니에게는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었는데 미술학원 가면서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고 우산을 들고 딸의 미술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원에 도착한 아주머니는 학원 문 앞에 서서 들어가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계셨다. 부랴부랴 나오는 통에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심지어는 앞치마까지 둘러맨 채 서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혹시나 엄마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 하지 않을까 염려가 밀려왔다. 아주머니는 학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학원 건물 주변의 골목에서 딸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여전히 빗줄기는 굵었고 한참을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혹시나 해서 학원이 있는 3층 쪽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학원이 끝난 듯 보였다. 학원 3층 창문에서는 마침 빗줄기가 궁금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온 것을 직감이라도 했는지 아주머니의 딸아이가 창가에서 내려다보았고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딸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딸은 못 본 척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살짝 고개를 내밀고 또 다시 숨기곤 하는 것이었다. 딸은 역시나 엄마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골목에서 숨어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훔치며 아주머니는 딸을 못 본 체 하며 가게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미술 학원으로부터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이 날아 왔다.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피하던 딸의 모습이 생각나 전시회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나절을 고민하던 아주머니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다. 끝났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달려온 아주머니는 다행히도 열려있는 학원 문에 한도의 한숨을 쉬었다.

또 다시 학원 문 앞에서 망설였지만 결심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하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한 그림 앞에 멈춰선 아주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그림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의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이었다. 비 내리는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한 여인이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신발을 신은 모습이 한 달 전 학원 앞에서

딸을 기다리며 서 있었던 아주머니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 아주머니를 피한 것이 아니었고 창밖을 자주 내다보며 자신의 화폭에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엄마 곁으로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 딸과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모녀는 그 그림을 오랫동안 함께 바라보았다. 딸은 가장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머니는 가장 행복한 눈빛으로...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는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자식 또한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고

걱정하고 사랑한다. 하찮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역대상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뜻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뜻인데 그 때문에 모든 형제들 보다 귀중하다는 의미였다. 이 세상에 수고로이 낳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우리의 자녀를 낳을 때에 대수롭지 않게 낳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자녀들은 모두가 존귀한 존재였고 소중한 자녀들이었다. 그러므로 사실은 우리가 야베스이고 우리 자녀들이 야베스인 것이다.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자녀삼기 위해 아들 예수의 목숨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목숨과 맞바꾼 존재들이다.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야베스라고 부르신다. 우리는 참으로 귀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가치를 알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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